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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여울의 데이터 창고, 예측 불가능성과 상상력 사이

김성호(Kim, Sung-Ho, 미술평론가)

I. 데이터에 대한 불신
인간의 편의적 삶을 위해 발명된 기계 장치는 전자 장치로, 컴퓨터로 그리고 인공지능으로 발전해 왔다. 즉 오늘날의 상황은, 기계화의 1차 산업혁명, 대량생산화의 2차 산업혁명, 정보화의 3차 산업혁명으로부터 바야흐로 융복합의 4차 산업혁명의 신세계로 접어들고 있는 중이다. 오늘날 정보 독점은 옛말이고 모든 것이 빅데이터로 축적되고 활용되는 혁신적인 테크놀로지의 세상에 이르게 된 것이다. 이제는 데이터는 단지 축적되고 사용될 뿐, 그 데이터가 유의미한 것인지 묻는 것조차 의아하게 간주되는 시대가 되었다.
손여울의 작품은 바로 여기서 시작한다. “데이터는 과연 신뢰할 수 있는 것인가”라는 물음이 바로 그것이다. 지극히 과학적인 방식으로 데이터를 산출하고 시각화하는 미디어아트의 장에 몸을 담고 있는 작가가 던지는 의외의 화두인 셈이다. 그도 그럴 것이, 그녀의 작업은 학부에서 동양화를 전공했던 전통의 심연에 자리한 채, 컴퓨테이셔널 테크놀로지를 대면하고 활용하고 있는 까닭이다. 그런 면에서 그녀의 작업은 가히 예술이 품은 과학이라 할 것이다.

II. 긍정에 이르는 부정: 데이터 유기체 & 데이터 깃발
이번 개인전 《데이터 창고((D+T)*A storage)》에서, 작가 손여울은 데이터로 대변되는 컴퓨팅 테크놀로지의 존재를 삭막한 공학이 아닌 피가 흐르는 유기적인 생물학, 바람이 일렁이는 포근한 자연학 혹은 따뜻한 미학의 장 안에서 재성찰한다. “나는 기술을 더 적절하게 증오하기 위해 기술을 사용한다”는 백남준의 아포리즘(phorism)처럼, 그녀 또한 데이터를 불신하기 위해 데이터에 대한 기술을 익히고 그것을 활용해서 작품을 구현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작가 손여울은 ‘데이터의 모호성, 데이터 조작, 데이터의 표현과 이해 방식, 데이터로 현상을 이해하는데 있어 직면한 괴리’ 등 자신의 작품 속에서 과학기술에 대한 세간의 장밋빛의 낙관적 사유를 재고한다. 동시에 그녀는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개체를 생성하는 컴퓨터 공학을 통해서 전통/현대, 과학/예술 사이에서 예술적 매체를 확장하는 실험적인 미디어아트를 구현하려고 시도한다. 즉 한편으로는 데이터로 대변되는 과학 기술을 밀쳐내고, 한편으로는 그것을 끌어안으려는 시도를 동시에 펼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그녀의 작업은 한편으로는 공학적이고 또 한편으로는 공학 비판적이다. 아울러 그녀의 작업은 컴퓨터 공학의 다양한 데이터를 질료로 삼아 우리의 사회 전반에 경종을 울리는 사회 비판적 혹은 사회학적 작업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예를 들어, 그녀는 작품, 〈데이터 유기체 - 정병(Data Cistern - Data Organism in Cistern)〉(2014)은 인터넷에 공개된 ‘이산화탄소 배출량’뿐 아니라 ‘실시간 지진 데이터’와 더불어 ‘2015년에 사망한 어린이 수’의 데이터를 활용하기도 한다. 기아, 재난, 전쟁 등 다분히 사회적 문제의식이 함유된 주제 아래 수집된 데이터들은 최종적으로 반짝이는 LED의 ‘빛’으로 수렴된다. 또한 그녀의 작품 제목의 일부인 ‘정병’은 ‘불교에서 관음보살이 중생의 고통을 덜어 주고 목마름을 해소해 주는 깨끗한 물’과 같은 의미를 함유함으로써, 죽음의 이미지로부터 생명의 이미지로 자신의 작품 세계를 견인해 낸다. 부정의 극을 비판하기 위해 부정의 데이터를 가져오고 결국 그것으로 부정/긍정의 메시지를 동시에 전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녀의 또 다른 작품 〈데이터 깃발(The Flag of Data)〉(2017)을 보자. 작가 손여울은 이 작품에서 2006년 집계된 각 국가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비교하면서 데이터의 오차 범위를 따져 묻는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작가는 NASA의 2006년 대기 중의 이산화탄소 발생과 움직임을 위성 촬영한 영상을 바탕으로 2006년 1월 26일 ‘테이블산’ 화재에서 발생된 이산화탄소 양에 대한 이해를 연구하고 분포도에 따른 데이터 값을 조사하여 소책자로 만들기도 했다.
각기 다른 기관, 출처에 따라 데이터 값들의 사이에 보이는 차이 값에 주목하는 작가는 이 오차 범위가 데이터 수집의 오류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보다 각 국가의 정치, 사회적 입장 때문에 유발한 것임을 밝혀낸다. 즉 작가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국가들이 환경오염의 주범이라는 관점보다 역설적으로 부유한 국가들을 가리키는 지표라는 비판적 메시지를 함께 제기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빅데이터 자료 값을 연구하고 하나의 알고리즘 속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도록 범주를 정하는 그녀의 작품은, 창작 과정의 고된 노동과 달리 매우 단순하면서도 서정적인 이미지로 가득하다는 것이다. 사회 비판적 메시지가 가득한 작품이 주는 따뜻한 정서, 부정으로 출발해서 긍정에 이르는 끝, 그것의 아이러니는 곱씹을 만하다.
작가 손여울은 오차 값이 작으면 LED 깃발이 작게 움직이고 오차 값이 크면 크게 움직이는 단순한 방식을 호롱불 형식의 램프 안에서 작동하게 함으로써 건조하고 삭막한 데이터 값을 매우 서정적인 감성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간다.

III. 서정적 감성과 예측 불가능성: e-나무 프로젝트 & 항상성을 찾는 나무
그녀의 또 다른 작품인, 〈e-나무 프로젝트(e-Tree Project)〉(2017)에서도 우리는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은 서정적 감성을 쉬이 발견한다. 이 작품은 자연에서 찾아볼 수 있는 엘시스템(Lsystem) 알고리즘을 활용하여 다양한 데이터를 저장하고 연산의 범주를 설정한 후 컴퓨터가 랜덤으로 작동할 수 있도록 프로그래밍한 작업이다.
이 작품을 위해서 작가는 2013-2014년 동안의 약 200개국의 '이산화탄소 배출 데이터'와 2014년 당시의 약 200개국의 ‘인터넷 사용자수 등 사회적 문제의식이 다분한 데이터를 사용했다. 관객은 이 작품의 인터넷 사이트((http://igor.gold.ac.uk/~yson001/pfa/index.html)에 접속하여 작가 손여울이 만들어 놓은 각 데이터 항에 따른 각각의 나무들(E-Tree01~06)에 접속해서 마우스를 클릭해볼 수 있다. 이때마다 나무 형상은 랜덤의 형식으로 인해 자신의 모습을 다양하게 계속 바뀌게 된다. 작가는 딱딱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득 담은 데이터를 통해서 어떠한 이름으로 특정할 수 없는, 서정적 감성이 가득한, 다양한 형상의 나무들을 출몰시킨다.
우리가 유념할 것은, 이 작품에서 작가는 가장 기초적인 데이터의 연산 방식을 통해서 나뭇잎의 색의 범주, 식물 줄기의 길이, 각도 등을 정해 놓았을 뿐, 관객이 참여해서 살펴볼 수 있는 나무의 구체적 형상은 컴퓨터의 산물이라는 점이다. 따라서 작가는 자신의 작품이 어떠한 순서로 어떠한 형상으로, 어떠한 식물이 어떠한 움직임으로 나타날지를 끝내 알 수 없다.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unpredictability)은 컴퓨터가 랜덤으로 이 모든 창작의 결과물을 제시하는 까닭이다.
한편, 컴퓨터 공학의 변주를 통한 ‘서정적 감성’과 더불어 랜덤으로 인한 창작 결과로부터 기인하는 ‘예측 불가능성’은 또 다른 작품 〈항상성을 찾는 나무(The tree seeking maintain homeostasis Homoeostasis)〉(2018)에서도 예외는 아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인공 나무에 대한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표시한 빅데이터로부터 121개 국가의 각 데이터 값을 가지고 프로그래밍과 함께 나뭇가지의 길이, 간격, 각도와 나뭇잎의 색이 조절되어지는 작품이다.
작가는 홀로그램 박스 안에서 작동하는 이 작품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가장 큰 결과물과 가장 적은 결과물을 나뭇잎으로 표시하고, 그 사이를 점으로 된 물고기가 유영하도록 하는데, 이 작품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적은 결과물에 이르면 가지 길이와 간격을 길게 만들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많은 결과물에 이르면 반대로 작동하도록 만들어서 항상성을 유지하도록 만든 작업이다.
그런 면에서 이 작품은 데이터를, 현상의 이해를 위한 도구로서의 존재가 아닌, 알고리즘을 바탕으로 값을 조절하고 계산하고 컴퓨터가 알고리즘으로 새로운 값을 생산하게 만들어, 관객들로 하여금 ‘예측 가능성 안에서 예측 불가능성’을 탐구하게 만드는 작업이라 하겠다.

IV. 데이터의 시각화와 예술적 상상력
작가 손여울의 작품에 대한 해석에 있어 관건은 그녀가 컴퓨터 공학의 데이터를 질료로 삼고 미술의 언어로 담아내는 사회학적 메시지의 이중적 함의에 관한 것이다. 즉 그녀의 작업은 사회 비판적 입장으로부터 공학적 데이터를 바라보면서 시작되지만, 그녀의 작품이 최종적으로 지향하는 지점은 스스로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를 품어 안는 따뜻한 서정성이다. 차갑고 건조한 컴퓨터 공학의 데이터에 따뜻한 서정적 감성의 옷을 입혀 기계의 육화(肉化)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부정으로부터 긍정을 견인하는 그녀의 사회 비판적 메시지 혹은 사회학적 관점은 그녀의 작업을 예측 불가능성과 서정적 감성 사이의 어딘가에 위치시킨다.
한편, 손여울의 작업은 알고리즘을 통해 데이터 값을 정하고 범주를 정하지만, 그 완성은 컴퓨터에게 일임함으로써, 랜덤으로 작동하는 컴퓨테이션 작업을 실행하기도 한다. 이러한 작업은 창발성의 관점에서, 어떠한 속성이 창발될 것인지를 가늠할 수 없다는 ‘예측 불가능성’을 기대케 한다.
다만, 손여울의 향후 작업을 위한 관건이 있다면, ‘데이터 시각화’를 이루는 조형 언어의 구조적인 질서를 좀 더 해체하여 변형과 변주의 유연성을 도모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는 것이다. 이러한 유연성을 확보한다면, 지금까지 선보였던 데이터들의 결합이 야기하는 창발성과 랜덤에 의한 예측 불가능성을 뛰어넘는 작가 손여울이 진두지휘하는 예술적 상상력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즉 기존의 ‘예측 불가능성과 서정적 감성’ 사이에 위치한 작업으로부터 ‘예측 불가능성과 상상력’ 사이로 이동한 그녀의 작업을 기대해 볼 수 있을 것이다. ●